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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의 수상록/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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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픔이라는 감정과는 조금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슬픔을 무척 귀하게 여깁니다. 때로는 슬픔으로 마음을 가꾸고, 그 위에 지혜나 덕성을 얹어 놓기도 합니다. 슬픔이란 감정이 마치 고귀한 것처럼 여겨지는 모습이, 나로서는 조금 낯섭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슬픔을 ‘악의’이라는 뜻으로 쓰기도 했다 합니다. 아마도 슬픔이 사람을 해치고, 때로는 미치게도 만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슬픔을 비겁하고 연약한 것으로 보고, 현자라면 이를 멀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려의 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몽골군에게 패하고 포로가 되었는데, 하루는 자신의 딸이 초라한 행색으로 물동이를 이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울고 통곡했지만, 그는 조용히 땅만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처형당하는 순간에도 그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친구 하나가 포로들 사이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갑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가슴을 치며 흐느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슬픔이라는 것은 차례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가슴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을 때 비로소 터져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조선에서도 있었습니다. 변방에 머물던 한 왕자가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형은 집안의 기둥이었고, 잠시 뒤에는 둘째 동생의 명예마저 위태로워졌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묵묵히 견디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하인 하나가 병으로 죽자 그는 갑자기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사소한 일에 무너졌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그는 그전까지의 모든 것을 꾹 눌러 참아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슬픔은 가장 작은 일에도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그 무너짐은 이전의 모든 고통을 함께 품은 것입니다.

몽골의 장군이 고려왕에게 물었습니다. “자식의 죽음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더니, 친구의 불행에는 왜 그토록 슬퍼하였는가?” 왕은 대답했습니다. “처음 두 고통은 너무 커서 눈물로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고통만이 비로소 눈물로 흘러나왔을 뿐입니다.”

고대 화가가 죽음을 그릴 때, 사람들의 슬픔은 섬세하게 표현했지만, 그 아버지만은 얼굴을 가린 모습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그 이상의 슬픔은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한 여인이 열네 아이를 잃고, 돌이 되어버린 전설을 이야기합니다. 너무 깊은 슬픔은 말이 없다.

사람은 큰 충격을 받으면 멍해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집니다. 그러다 문득 눈물로 마음이 터져 나오고, 그제야 억눌렸던 감정이 몸과 마음을 풀어놓는다. 슬픔은, 어쩌면 그 울음으로 비로소 자신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용감히 싸우던 아들이 죽은 것을 본 계백 장군은, 그 시신 앞에서 말없이 서 있었다. 그는 울지도 않았고,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쓰러져,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사랑도 그렇다. 너무 깊으면 말이 없다. 혀는 굳고, 귀는 울리고, 온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오른다. 기쁨도 마찬가지다. 뜻밖의 큰 기쁨은, 때로는 죽음을 부르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깊은 감정 속에 빠지지는 않는다. 감수성이 그리 예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날마다 그것을 이성으로 튼튼히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