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수상록/1.5
로마의 특사 마르키우스는 마케도니아 왕 페르세우스를 찾아가 전쟁을 미루자 청했습니다. 페르세우스는 잠자리에 들던 중이었지만, 며칠 동안 특사에게 머물 곳을 내주었습니다. 그는 그 사이에 적이 군대를 준비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는 그 대가로 파멸을 맞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로마의 원로들은 탄식했습니다. 옛 조상들은 전쟁조차도 덕으로 싸웠다며, 속임수나 기습 같은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 반드시 선언을 하고, 가능한 한 시간과 장소까지 정하곤 했습니다. 그들에게 전쟁은 정의로운 질서의 일부였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그런 조상의 뜻을 기리며, 반역자 피로스와 불성실한 학장 팔리스키에게 마음을 닫았습니다. 전쟁의 본질은 교묘한 술수보다 용기와 정직함에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스의 전쟁에서조차, 기만으로 승리하는 것은 영광이 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패배는 칼날 앞의 용기에서 오는 것이지, 속임수에 속아넘어가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너희가 덕을 알지 못하면, 구원도 없다.” 고대의 테르나테 사람들은 전쟁을 하기에 앞서 그 사실을 분명히 알렸습니다. 무슨 무기, 어떤 병력을 쓸지 모두 털어놓고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싸움이 시작되면, 그 어떤 방책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습니다.
피렌체에서는 ‘마르티넬라’라 불리는 종을 한 달 전부터 울리며 전쟁을 알렸습니다. 기습은 그들에게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와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종종 여우 가죽이 필요하다 말합니다. 명분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세상이 된 탓입니다. 협상 중에도 우리는 칼을 쥐고 있습니다. 포위된 자는 협상을 나가지 말라는 규율이 생겼습니다.
샹파뉴의 기사 앙리 드 보는 성이 무너지기 직전 협상을 나갔고, 결국 그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항복해야 했습니다. 그때 불붙은 광산이 성의 기둥을 무너뜨렸고, 그의 판단은 옳았음을 증명했습니다.
에우메네스는 노라 성에서 포위당했을 때 말했습니다. “내 칼이 손에 있는 한, 나보다 위대한 이는 없다.” 그는 결국 조카를 인질로 주었지만, 그것은 굴욕이 아닌 선택이었습니다.
나는, 때로는 속임수를 쓰는 세상 속에서도 정직함을 믿고 싶습니다. 그것이 어리석다 하여도, 마음이 가는 쪽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절망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믿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린 판단은, 겁이 나서가 아니라, 선함에 대한 마지막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