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사/빛의 파동론
이 부분은 en:w:Fresnel's physical optics에 아주 수상할 정도로 잘 나와있으니, 문서를 읽어보기를 바란다. 사실 이 문서의 대부분의 내용은 저 문서에 나와있다.
배경
[+/-]시대적 배경
[+/-]프랑스는 루이 14세 이후 유럽에 절대왕정이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그전까지의 유럽은 왕권이 약했기 때문에, 하나의 국가 내에서도 귀족의 영향력이 왕과 비견되었다. 루이 14세는 이러한 프랑스를 귀족 중심의 국가가 아닌,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만들었는데, 그동안의 중근세 유럽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체제이기 때문에 이를 절대왕정이라고 한다.
루이 14세의 치세에서 콜베르의 제안에 따라 왕립과학아카데미가 만들어졌다. 이는 절대왕정을 통해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거듭난 파리를 과학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18세기 과학을 이끌었다.
그리고 18세기 말, 계몽주의자들에 의해서 프랑스에는 대혁명이 일어난다. 민주주의로의 급격한 전환과 함께 새로운 체제에 걸맞는 말빨 좋은 선동가들에 의해서 수많은 숙청이 일어났다. 이 유탄은 과학아카데미도 피할 수 없었다. 절대왕정의 상징이었던 왕립과학아카데미는 이제 해체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는 에꼴(대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교육기관이 탄생하였다.
빛의 파동론을 아주 잘 정리한 프레넬은 바로 이 에꼴, 에꼴 폴리테크니크에서 수학하였다.
이론적 배경
[+/-]과학혁명 시기, 두 명의 과학자, 뉴턴과 하위헌스는 각각 다른 주장을 한다. 뉴턴의 경우 Optiks에서 빛이 입자임을, 하위헌스는 Traité de la lumière에서 빛이 파동임을 주장하였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어찌 되었든 간에, 뉴턴은 이후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를 통해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었고, 18세기는 곧 뉴턴의 시대임과 동시에 뉴턴주의라고 하는 믿음을 만들어 내었다. 다시 말해서, 하위헌스의 파동설은 뉴턴주의라는 믿음 하에 무시되었다. 뉴턴주의의 입자이론(corpuscular theory)으로 기존의 과학자들은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토머스 영의 실험
[+/-]
뉴턴의 빛의 입자설에는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뉴턴이 입자임을 증명하지 않고 입자라고 단정 지은 것이다. 더 정확히는, Optiks에서 빛은 입자나 파동, 둘 중 하나로 단정짓고 있었는데, 뉴턴은 이것이 파동이라는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따라서 뉴턴은 빛을 입자라고 해석했다.
문제는 뉴턴주의가 퍼지고 난 다음이었다. 뉴턴주의는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 마냥 신봉의 대상이 되었고, 뉴턴이 잘못 말하건 말 건 상관없이 그대로 수용하게 되었다. 뉴턴이 데카르트를 지지하던 합리주의자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도입한 에테르도, 빛의 입자설도 정론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곧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빛은 입자가 맞으니까, 어떤 이상한 상황이 생긴다면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내서 빛이 입자임을 변호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 과학자이자 의사 토머스 영은 빛의 파동설을 지지하는 실험을 고안했다.
토머스 영의 실험은 이중슬릿을 사용한 간섭(Interference) 실험이다. 오른쪽 그림과 같이 같은 파원에서 나온 빛을 두 슬릿(S2)에 통과시키면, 빛이 입자라면 그대로 통과하여 두 스팟에만 밝게 빛날 것이고, 파동이라면 그림처럼 간섭무늬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 실험은 빛이 파동임을 지지했다.
일단 토머스 영의 실험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과학자들의 사고이다. 괜히 확실하지 않은 쪽을 지지했다가 거짓으로 밝혀지면 자신의 위신에 영향이 가기 때문이다. LK-99 같은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과학자가 김아무개면 몰라도, 어디 교수를 달거나 연구원을 달고 있는데 함부로 불확실한 것에 맞다고 하겠는가?
복굴절과 프레넬
[+/-]이런 완벽한 실험이 묻혀갈 때 즈음에 복굴절이라는 현상이 편광과 함께 부상했다. 말루스(Étienne-Louis Malus라는 사람인데 말루스인지 말뤼스인지 잘 모르겠다. 프랑스어에 자신이 있다면 이 사람의 이름을 고쳐주고 이 괄호는 지워주길 바란다.)가 발견한 현상은 기존의 편광이론에는 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복굴절이라고 하는 것은 방해석 같은 물체에서 광선이 마치 두 개(複)로 갈라져 나오는 것 같은 현상이다. 말뤼스는 비금속 표면에서 반사된 빛에도 이 두 개 광선 중 하나의 특성을 따르는 것 같다는 성질을 발견한다. 즉, 비금속 표면에서 반사된 빛이 편광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말루스는 이를 편광이라고 칭했고, 또 편광면이라고 하는 개념도 도입했다. 또 추가적인 연구에서 말뤼스라는 이름이 물리학 책에 남게되는 그 법칙, 편광면과 이루는 각도에 따라서 에 빛의 세기가 비례한다는 말루스의 법칙을 발견한다. 더불어 복굴절에서 갈라지는 두 개의 빛이 서로 다른 편광 상태를 가진다는 것도 알아낸다.
이제 뉴턴주의자에게 커다란 난제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면 이 복굴절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뉴턴주의자들은 여전히 입자이론적인 설명을 고수했다. 하지만 설명 자체가 굉장히 복잡하고 알아먹기도 힘들었으며, 굳이 이걸 왜 해야 하나 싶었고, 더 간단하고 명료한 방식 뜬금없이 공학자 프레넬이 제시했다.
프레넬은 원래 광학에 관심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기에 에꼴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한 후 에꼴 나쇼날 데 퐁 세 쇼세(École nationale des ponts et chaussées)으로 진학했고, 나폴레옹이 집권하던 시기에 Corps des ponts et chaussées에 ingénieur ordinaire aspirant으로 들어갔다.(ponts는 다리, chaussées는 도로라는 뜻이다.)
하지만 1815년 즈음에 나폴레옹이 청야작전으로 끝까진 버텨낸 러시아에 패배하는 등의 여러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광학실험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때 빛을 파동이라고 가정한 후에 이론을 전개해 나갔다. 프레넬이 만든 이론을 깔끔하고 완벽했고, 이것은 후대에 전해져 광학을 배우는 물리학도의 머리를 깨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빛의 파동적인 성질의 근원은 하얀 죽음이 프레넬의 목숨을 가져간 후 40년 즈음이 지나서 맥스웰에 의해 제시된다. 이 부분은 뒤의 챕터에서 다룰 것이다.
광학에서 사용하는 코누 곡선(Cornu spiral)의 경우, 프레넬의 회절이론을 통해서 등장하지만, 이 곡선은 지난 챕터에서의 오일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 곡선의 경우 원래 탄성을 계산하기 위해서 고안된 곡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