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사/역사관과 우주관
서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우리가 역사라고 하는 것을 다룰 때는 어떠한 관점을 통해서 바라보게 된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로, 우리가 과거의 사건들을 볼 때 두 가지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 사건을 날 것 그대로 혹은 남이 기록한 것을 받아들임.
- 외부에서 받아온 사건을 머리 속에 있는 기억들과 그것으로 형성된 사상이나 신념을 통해서 해석함.
따라서 우리는 (기록으로 사건을 접한다면)기록한 사람의 가치판단을 통해서 지식을 사건을 얻게 되고, 이것을 또, 우리의 가치판단을 통해 사건을 해석한다. 이런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할 때도 역사를 해석할 때도 서술은 어떠한 관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렇게 역사를 서술하는 관점을 역사관(歷史觀)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사실만을 적는데 왜 가치를 지니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받아들이는 역사는 모든 데이터들의 집합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실은 모든 사실이 아니라 적절히 취합한 정보들이다. 어떤 식으로 정보를 취합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의 해석을 따로 붙여주지 않더라도 가치판단이 들어가게 된다.
대표적인 예시가 프랑스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은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 18세기의 계몽주의 사상이 마침내 현실로 피어나가는 과정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가뭄으로 인해서 쌓인 대중들의 불만을 동력 삼아 체제를 뒤집어 버리는, 성공한 반란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두 가지의 해석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고, 그것을 담아내는 서사구조가 있으나, 관점에 따라서 똑같은 사건을 정반대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관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민중사관이나 영웅사관, 실증사관이나 유물사관 등 하나로 지칭되거나 카테고리화 된 역사관도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각자의 역사관들이 존재한다.(다시 말해 하나로 묶인 역사관들은 그 역사관에 집중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역사관이지, 그런 역사관으로 집필했을 때는 그런 용어로 지칭되지 않았다.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용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관은 아니지만, 이런 것의 대표적인 예시가 "뉴턴주의"와 "코펜하겐 해석"이다.)
따라서 E.H.카가 말했듯,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과거에는 논의되지 않았던 사상들이 후대에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또, 역사와 역사관의 이런 불가분한 성질 때문에 역사는, 특히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강조된 역사는 선전선동의 도구로 쓰여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이를 최악의 형태로 악용한 사례는 아마 르완다 학살일 것이다. 민족주의와 분열시켜 지배하라(Divide et Impera)는 식민지 통치수단이 뿌리가 되어 나타난 최악의 사건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물리학사를 포함한 모든 역사를 볼 때는 모든 것을 다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맞는지, 서술방향이 목적성을 띄고 있지는 않는지를 따져가면서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우주관
[+/-]이 관점이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할 때도, 스스로 생각할 때도 생기는 것이므로, 아주 넓은 범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다.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것 역시도 하나의 관점으로 볼 수 있고(세계관), 집단의 지식과 지성을 통해서 이것이 정리될 수도 있다. 고대집단은(사실 현대집단도) 이 세상을 해석할 때도 각자의 집단에서 그들이 수집한 지식과 관념을 통해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하였다. 이것을 우리는 우주관이라고 한다.
고대
[+/-]기본적으로 고대인들에게 세상을 설명하는 방법은 (비록 그게 비합리적이고 허구 속의 이야기임을 인지하고 있더라도)신화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황허, 아리안, 마야, 아즈텍, 유목민족 등 여러 문명권에서 신화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세계의 요소를 설명하는데 사용되었다. 때로는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전승되어 약간의 변형이 생기기도 하고(페르시아와 베다), 때로는 다른 문명과 융합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신화가 흡수되기도 한다.(헬레니즘)
고전 및 중세
[+/-]천문학이 발전하고 측정이 조금 더 정밀해지면서 좀 더 새로운 설명들이 우주관에서 대체되기도 한다. 동아시아의 우주관도 베다의 흐름에 따라 칠요를 도입했고, 유럽의 우주관은 프톨레마이오스로 인해 주전원이 들어간 세계로 들어갔다.
과학혁명 이후의 우주관
[+/-]코페르니쿠스부터 시작한 과학혁명의 시대가 아이작 뉴턴으로 끝맺음하면서 우리가 우주라고 하는 것에 그나마 비슷한 보편원리가 적용되는 우주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19세기에 걸쳐 천문학이 발전하고 20세기 초에 대논쟁을 기점으로 우리의 우주는 단순히 태양계와 그 외의 것이 아닌, 더 먼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20세기에 걸친 우주 인식의 변화는 대중과학과 맞물려 코스모스 같은 교양서적이나 다큐멘터리 등으로 소개되고 있다.
간략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
[+/-]이 내용은 과학혁명 단원에서 더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므로, 간략한 역사만을 설명할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가톨릭 신부다. 이 사람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을 배운적이 있고,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보았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에서는 지구가 중심에 있었으나, 코페르니쿠스의 경우 태양을 중심으로, 달을 제외한 다른 모든 천체들이 회전하는 것으로 바꾸어보았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망원경은 없었으므로, 지구와 가까이 도는 천체들은 당연히 칠요였다. 그 외의 것들은 여전히 더 먼 곳에서 마치 결정처럼 박혀있는 형태로 생각하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은 파격적이었던 만큼, 그것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튀코 브라헤의 우주론인데,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을 부정하고, 태양을 중심으로 내행성(지구 궤도보다 안쪽에 있는 행성들)이 돌고, 나머지 외행성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주장하였다. 이 역시도 천상의 완벽함은 깨지는 설명이었으나, 여전히 지구는 우주의 중심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이 과학혁명의 시작으로 둘 수 있게 된 것은 튀코 브라헤의 컴퓨터(계산하는 사람), 요하네스 케플러에 의한 것이었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튀코 브라헤 사후에 튀코 브라헤의 관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케플러의 제3법칙을 만들어낸다. 이 법칙들은 다음과 같다.
- 행성은 타원을 궤도로 공전한다.
- 항성과 행성을 연결하는 선분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면적을 지난다.
- 궤도의 장반지름의 세제곱은 주기의 제곱에 비례한다.
이 법칙들은 후대 과학자인 뉴턴에 의해서 증명된다. 뉴턴은 케플러가 죽고 난지 13년 뒤에 태어난 인물로, 40대에 접어든 나이에 핼리의 부탁을 받아서 케플러의 3법칙을 증명한 책 프린키피아를 출간한다. 프린키피아는 단순한 가정을 통해서 기하학적으로(수학적으로) 케플러 3법칙을 증명하게 된다. 프린키피아의 깔끔한 증명과 해설(3권)을 바탕으로 유럽의 우주관은 종전의 우주관에서 뉴턴의 우주관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여기에는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바탕으로 핼리가 계산한 핼리혜성의 주기 예측도 한 몫 한다.
현대의 우주관
[+/-]뉴턴이 죽고 난 후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사건들이 있게 된다. 우선 수성의 공전궤도가 뉴턴의 설명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했고, 이것을 보정하기 위해 불칸이라고 하는 가상의 행성을 상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칸의 존재가 검증되지도 않았고, 후에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이 문제는 새로운 이론을 통해서 해소되었다.
또, 이전에는 그저 천상에 박혀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천체들도, 뉴턴의 보편적인 법칙(만유인력)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함을 알았던 사람들로 인해, 이것도 역시 우리 우주 안에 있는 질량 덩어리로 이해 되었다. 그저 성운으로 치부되었던 것이 대논쟁과 허블의 발견으로 인해서 우리의 "섬" 우주보다 더 멀리 떨어진 다른 우주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좀 더 지나 이 섬 우주(universe)는 은하(galaxy)로 불리게 되었고, 우리의 우주는 그 전의 우주(우리은하)가 아니라 더 넓은 우주로 인식되었다.
우주의 영속성에 대해서 우주가 같은 크기를 유지하는지, 아니면 팽창하는지에 대한 논쟁들도 60년대 들어서 우주배경복사를 통해 팽창했고, 어떠한 임계점이 존재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우주의 거대구조들도 서서히 밝혀지면서 우주가 중력이론을 기반으로한 진화과정에 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도 마치 신화의 그것처럼, 과학이 밝혀줄 수 없는 초(超)자연적인 영역은 믿음의 형태로 우주관을 형성한다. 다시 말해 현대 우주관은, 비록 그것이 수학적 과학적인 엄밀성에 기대고 있어도, 고대의 그것만큼이나 신빙성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형태의 관점이 많다.
빅뱅우주론
[+/-]빅뱅우주론은 우주가 미세한 공간에서 팽창하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우주론이다. 현대 우주론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우주론이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정상우주론인데, 아인슈타인은 이 설을 지지했다.
1964년 펜지어스와 윌슨이 전파망원경을 통해서 우주배경복사(CMB, 우주배경복사 중에 마이크로파이므로 우주마이크로파배경이라고도 한다. 중성미자 우주배경복사나 다른 입자들의 우주배경복사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이쪽이 더 정확한 명칭이다.)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현재 알려진 혹은 믿고 있는 빅뱅우주론의 미래는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암흑에너지 밀도가 꾸준히 유지되어 우주의 모든 것이 다 멀어져 우주가 종말에는 모두 얼어버리는 빅프리즈, 또 다른 하나는 암흑에너지 밀도가 더 높아져 더 빠르게 우주의 모든 것들이 멀어져 찢어져 버리는 빅립, 나머지 하나는 종말에 가까울수록 가속팽창이 줄어들면서 다시 한 점으로 돌아가는 빅크런치이다.
다중우주론
[+/-]다중우주론은 다양한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매우 많은 가설들을 포함하고 있고,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과학이 밝혀줄 수 없는 곳에 대한 상상이기 때문에 검증할 수 없는 우주관이다.
현대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의 표준적인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것을 따르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해석은 다세계해석이다. 다세계해석은 상태가 붕괴되서 관측이 되면, 하나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둘 다 결정되고, 그 중 하나가 보이는 세계가 지금의 세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슈뢰딩거 고양이에서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때, 세계가 살아있는 세계와 죽어있는 세계로 나뉘어 우리는 그 중 하나를 택한 세계인 것이다. 이 다세계해석을 받아들이면 양자역학적으로 상태가 갈리는 매순간순간마다 갈라진 평행우주가 만들어진다.
또 다른 다중우주론은 우리 우주가 이렇게 마치 인간을 위해 설계된 것에는 수많은 우연성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다중우주론도 존재한다. 여기서는 빅뱅우주론과 결부되어서 단 하나의 빅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차원 공간 속에서 여러가지 빅뱅이 존재했고,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가 딱 우리에게 알맞는 우주상수를 가진 우주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