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사/전기와 자기의 시대
19세기 이전의 전기와 자기
[+/-]전기와 자기는 갑자기 뜬금없이 생긴 개념은 아니다. 우리의 자연 속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듯이, 전기와 자기는 인류에게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의식적으로 인식되었다.
라이덴병
[+/-]전기를 가장 처음 인식한 것은 아마 천둥과 번개 같은 자연적인 현상일 것이다. 때론 신격으로 숭배되거나(그리스로마신화의 제우스, 북유럽 신화의 토르 등), 천벌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등, 전기는 그것의 근원적인 설명보다는 결과적인 것에 집중했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번개 같은 현상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제어에서 벗어난, 자연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대상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다뤄질 수 있으려면, 인간이 그것을 제어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 발견한 제어가능한 전기는 정전기였다.
밀레토스의 탈레스는 현재 인식되고 있는 기록상 고대 그리스에서 첫번째로 정전기에 대해서 기술한 사람이다. 탈레스는 호박석에 고양이 털 같은 것을 문지르면 깃털이나 작은 물질들이 붙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좀 더 탐구하면서 호박석에 마찰을 일으키면 일시적으로 자석의 역할을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이는 자석이 아니다.
전기나 자석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길게 진행되지는 못했는데, 이는 과학이 아니라 마술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도 한 몫 했지만, 실질적으로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리스 철학에 맞게 여러가지 설명들(가설들)만이 떠돌았다.
그러다 네덜란드의 라이덴에서 전기를 모을 수 있는 축전지를 발명했다. 그리고 이것은 (원래 어떻게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라이덴(Leyden)병이라고 불리게 된다. 라이덴병이라는 발명품이 중요한 것은, 그 전에는 마술이나 귀족들의 유희거리로 여겨지던 정전기에서 벗어나, 전기를 모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축전(대전)된 전기는 한 순간에 퍼져나가는데, 이것은 우리가 아는 방전과 똑같은 현상이었다.
아마 과학사에서 라이덴병을 빼먹지 않고 반드시 언급하는 국가가 하나 있을텐데, 그건 바로 미국일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자 발명가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전류를 발견할 때 사용한 방법이 라이덴병을 사용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혹은 폭풍우가 치던 날 라이덴병과 연을 연결하고, 연에 열쇠를 매달아 연을 날리는 것으로 번개를 유도했고, 그것으로 라이덴병을 충전시키고 방전시키는 것으로 전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기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제기한 이 발명품은 다른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줬고, 이는 전자기학의 시작을 열게 되는 열쇠가 되었다. 사실 18세기에 일어난 일이 하나 더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의 전자기학의 시작이기 때문에 뒤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자석
[+/-]자석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는 것임과 동시에 특정 지역의 특산품이었다. 그리스어 μαγνήτης가 마그네시아(Μαγνησία)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 송나라에서는 자석을 이용하여 지남철을 발명한다. 지남철은 남쪽을 가리키는 철(혹은 국자)라는 뜻으로, 다시 말해서 나침반이다. 이 발명품은 유럽에 두 가지 영향을 주었는데, 지남철이 유럽에 들어감으로서 항해술이 발달하게 되고, 이것은 곧 대항해시대의 서막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외르스테드가 전기와 자기가 서로 영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열쇠가 되었다.
실험과학의 계보에 있어서 중요한 프랜시스 베이컨과 함께, 그 뒤를 이은 윌리엄 길버트도 자석에서 언급할만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뉴턴 이전 시대에 자석에 대해서 실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실험과학의 포문을 열었다면 윌리엄 길버트는 그것을 자석에 접목했다. 자석의 관하여는 윌리엄 길버트의 연구성과를 보여준다.
전지
[+/-]전지는 전자기학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발명품이다. 통제가 되지 않던 전기를 통제가 되는 변인으로 이끌어왔고, 이것을 통해서 실험적인 측정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일정한 전압이 꾸준히 흐르는 전지는 이미 그 자체로 "전지"전능하다.
전지의 개발은 갈바니부터 출발한다. 갈바니가 개구리를 해부하던 중 생체전기를 발견하고, 여기서 얻은 아이디어를 친구 볼타가 받아 1800년에 볼타전지가 발명된다. 볼타전지는 축전지와 달리 꾸준한 시간동안 산화과정을 거치면서 전기를 흘려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정한 전압이 꾸준히 흐르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런 도구가 생겼다는 것은 곧 도구를 이용한 실험이 많이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외르스테드 법칙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자기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1920년 외르스테드는 강연에서 철사 양 끝에 볼타전지를 연결하다가 나침반이 방향을 바꾼 것을 발견한다. 앙페르와는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외르스테드의 발견은 그 강연에 영감을 받은 앙페르가 앙페르의 법칙을 발견한다.
비오와 사바르
[+/-]앙페르의 법칙
[+/-]자세한 이야기는 이곳에서 영어로 내놓았다.
앙페르는 외르스테드의 법칙을 바탕으로 소위 "오른나사 법칙"이라고 불리는 도선의 자기장 법칙을 발견한다. 사실 앙페르가 "오른나사" 법칙을 주장했는지는 모른다. 앙페르의 논문에서 "나사"같은 실용적인 단어가 들어갔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아마 전자기학을 쉽게 기억하는 과정에서 오른나사에 비유하여 하는 것일지 모른다. 위키피디아의 Right-hand rule문서에서는 플레밍이 이런 법칙을 뿌렸다고 말한다.
패러데이 법칙
[+/-]맥스웰의 통합이론
[+/-]해밀턴과 벡터 표기법
[+/-]이 부분은 한국물리학회 블로그의 내용을 많은 부분 참고하였다.
물리학에서 쓰이는, 특히 i, j, k로 쓰이는 표기법은 해밀토니안으로 유명한 해밀턴이 개발한 사원수에 기반한다. 사원수 는 다음과 같은 공리를 만족한다.[1] 사원수는 마치 실수와 허수의 관계처럼 성분을 더 늘려 4개(실수, i부분, j부분, k부분)으로 나타낸 수체계다. 즉, 사원수인 임의의 수 는 로 나타난다.
어디선가 익숙함이 느껴진다면 맞다. 실수부를 지우고, i, j, k부분을 살짝 바꾸면 으로 쓸 수 있다. 일반물리학에서 배운 i, j, k 표기법이 사원수에 기반하는 이유다.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한 해밀턴은 사원수에서 i, j, k의 계수는 벡터(vector)라고 하고, 실수부는 스칼라(scalar)라고 부른다. 또 사원수는 허수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보존하려고 했기 때문에 실수부를 제외한 각각의 부분들, 그러니까 에 대해서
으로 정의내렸다.
맥스웰은 맨 처음에 법칙을 제시할 때, 해밀턴의 이런 표기법을 모르고 있었다. 1870년대에 이르러 타이트(Peter Guthrie Tait)에게 사원수 개념을 전수받고 나서야 사원수 표기로 바꾸게 된다. 1873년에 출판한 전기자기론에서 사원수 표기와 이 체계에서 파생된 미분연산자를 통해서 좀 더 깔끔하게 정리한다. 이것 역시도 사원수라는 개념을 써야 했기 때문에, 헤비사이드가 사원수를 개량하여(폐기에 가깝다.) 벡터해석학을 도입하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4개의 깔끔한 식으로 정리가 되었다. 헤비사이드가 도입한 벡터해석학에서 벡터 표기는 로 표기를 하고, 스칼라곱(Scalar Product, 내적)을
으로 정의했다.헤비사이드의 표기에서 아무런 연산기호 없이 붙이는 것이 스칼라곱이다. 더불어 단위벡터에 대해서도 , 으로 제시했다. 각각의 성분에 대한 연산을 생각한 사원수와는 다른 점이다. 또, 벡터곱(Vector Product, 외적)에 대해서
으로 정의했다. 헤비사이드의 표기에서 두 벡터 앞에 V를 붙이는 것이 벡터곱이라는 소리다. 단위벡터에 대해서도 , , 로 정의했고, 두 벡터의 순서가 바뀌면 크기도 마이너스가 된다고 한 점에서 우리가 현재 배우는 벡터해석학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비사이드의 이 표기는 1885년에 Philosophical Magazine and Journal of Science에 투고한 Article에 나와있으므로, 구글북스 등을 통해서 무료로 접근할 수 있다.[2]
사원수에 대한 약간의 여담으로, 사원수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더 쪼개보자는 시도가 생겨났다. 맨 처음 수체계는 실수이고, 그걸 반으로 쪼갠 것이 허수(이원수)고, 그걸 또 반으로 쪼갰더니 사원수가 나왔으므로, 대수구조를 잘 유지하면서 각각의 연산을 잘 보존하면 사원수를 반으로 쪼갠 팔원수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걸 또 쪼개서 십육원수를, 또 쪼개서 삼십이원수, 육십사원수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쪼개는 것을 케일리-딕슨 구성이라고 하는데(케일리가 팔원수를 만들었다.), 쪼갤 때마다 연산성질을 하나씩 잃어버리기 때문에 쪼개면 쪼갤수록 쓸모가 없어진다.
남겨진 과제
[+/-]1800년대 말이 되어 눈에 보이는 법칙들은 거의 다 정복되었다. 중력에 관한 이론도 전자기에 관한 이론 역시도 거의 다 정립되었으므로, 이제 남은 사람들은 이 부족한 부분을 매꾸는 것이 주어진 역할이고, 이 부족한 부분만 매꾼다면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마침내 계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런츠는 이런 계몽의 길 앞에 마지막을 매꾸는 역할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 수학하는 사람들은 이런식의 전개를 좋아하겠지만, 물리하는 사람들은, 특히 대학 물리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반기지는 못할 것이다.
- ↑ Oliver Heaviside, 1885, On the Electromagnetic Wave-surface, Philosophical Magazine and Journal of Science, vol 19, 397-419쪽. 2025년 10월 3일, Google books에서 Philosophical Magazine and Journal of Science 1885년 6월자를 제공하고 있는 것을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