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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사/18세기의 물리학과 뉴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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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의 태동과 과학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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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실제세계에서 인정된 것은 핼리가 계산한 핼리혜성 주기를 맞췄을 때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예측은 뉴턴역학이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과학혁명의 완성은 이제 이 세상을 설명하는데 구닥다리 교회의 언어보다도 과학의 언어가 더 잘 들어맞는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이런 인식으로 태어난 것이 계몽주의이다. 18세기 전반에 걸쳐 이러한 움직임은 물론 뉴턴의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과학혁명 시기의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존 로크의 계약론, 홉스의 리바이어던 등 여러 철학적인 사조와 논의가 계몽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 뒤에는 학예를 존중하는 왕립 파리 과학 아카데미 같은 연구시설이 있었다.

이 시절 계몽군주는 국가의 혁신을 부르기 위한 최선단에 위치한 군주의 형태였다. 일종의 유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봉건제로 사로잡혀 있던 시절에서 벗어나 국가라는 단위로 정치체를 통합하고, 이를 위해서 서유럽의 선진문화를 배우는, 그런 것이 계몽군주의 역할이었다. 이런 새로운 개혁에 앞장섰던 인물이 감자대왕 프리드리히 2세이고, 표트르 대제이다. 각각 프로이센과 러시아의 왕이었던 이 두 인물은 서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개혁함으로써 프로이센을, 그리고 러시아를 굳세게 했다.

프리드리히 2세의 경우 어릴 때부터 학예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왕좌에 오르고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를 개편했다. 표트르 1세는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많이 낙후되어 있던 러시아와 입김이 쎈 러시아 귀족들(왕족들)의 간섭을 제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진창에서부터 세워올렸다. 동시에 베를린 아카데미와 파리 아카데미를 본 따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를 설립한다. 그리고 이 세 아카데미는 18세기 과학과 수학, 계몽주의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다.

백과전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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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뉴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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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썼다고 해서 모든 것들이 해결되는 것들은 아니었다. 이것에 대한 디테일들은 뉴턴 이후의 물리학자들(혹은 수학자들)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뉴턴역학의 기술과 더불어 라그랑지안이나, 파동방정식, 탄성에 관한 이론 등, 뉴턴이 완성한 체계를 바탕으로 뉴턴주의, 더 넓게 말해서 과학주의를 내리는 것이 시대의 과제였다.

18세기는 뉴턴역학의 탄생에서 바로 전자기학의 탄생으로 넘어가는 설명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부분이지만, 이 시기에 활동한 인물이 오일러라그랑주달랑베르, 라플라스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물리학을 이미 한 번 파보았다면 알법한 사람들이 많이 있던 시대이기도 하다.

오일러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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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지안과 해석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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