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자유
다신교 사회에서는 종교의 자유 자체가 다른 신격에 대한 숭배를 존중함에 따라 종교의 자유가 자연스럽게 통용되었으나, 특정한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다른 종교와 맞물릴 수 없는 경우, 해당 종교에 대한 박해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로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있다.
현대의 자유주의적 혹은 서양중심적인 맥락에서 종교의 자유는 크게 두 차례의 큰 전환점을 통해 보장되었는데, 하나는 루터의 종교개혁이고, 다른 하나는 그 동안의 사회 변혁 속에서 자유주의를 집대성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출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에 의해서 박해 받던 기독교가 종교의 자유를 준 방식은, 그들이 다른 믿음을 탄압하는데 있다.
종교의 자유와 사회
[+/-]현대의 여러 국가의 헌법에서 보이는 자유라는 표현은 자연법 사상으로 촉발된, 계몽주의적 흐름에 기반하고 있다. 자연법이라고 함은, 인간들이 스스로가 정한 실정법과 달리, 더 근본적인 세상의 법칙들을 통해서 이끌어낼 수 있는 규칙이나 법들을 의미한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세상의 법칙은 종교적으로는 절대자(하나님 등)이 될 수 있고, 현실적으로는 자연이 될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간섭에도 상관없이 일관적으로 유지되는 세상의 법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자연법을 통해서 인간은 자연권 혹은 기본권을 얻어내게 된다. 인간이 만든 어떤 체제나 사회에 구애받지 않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함으로써, 절대자 혹은 자연으로부터 얻어내는 것이 자연권이다. 대표적인 자연권에는 생존권이 있다. 그리고 다른 예시로 종교의 자유가 있다.
종교 혹은 신앙 체계는, 누군가 믿으라고 해서 저절로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고하고, 이해해나가면서 그 종교나 신앙 체계를 받아들이는, 혹은 반대로 믿지 않음을 내재적으로 얻어낼 수 있다. 현대의 과학의 영역에서도 뇌과학이 사람의 사고까지 읽어내는 단계에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진실로 어떤 종교를 믿는지 아닌지를 다른 사람이 알 수는 없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실효적인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믿는 종교에 도움이 될만한 행동인지를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의 종교의 자유
[+/-]종교인을 만날 때 모태신앙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모태신앙은 부모(특히 어머니)가 이미 어떤 종교의 신자여서, 자식이 태어날 때부터 종교의 신자인 상태를 말한다. 자연법 사상에서 갓태어난 아기도 자연권을 가지는 자유인이기 때문에 아기에게도 원칙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기가 제일 먼저 마주하는 사회는 가족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버려진 아이가 종교시설을 통해 양육이 되는 경우 역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종교의 자유는 어떻게 적용해야 되는가는 우리에게 많은 관점을 시사한다. 누구는 어린아이에게는 인지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를 이해하기 어려워서 어릴 때는 신자로 있다가 다 큰 성인이 될 때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누구는 자연권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라도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포교 활동과 비자발적 호응
[+/-]종교가 그 세를 불리기 위해서는 포교 활동이 필수적이다. 물론 직접 나서서 포교 활동을 하는 것은 세가 작거나 하는 이유로 세를 불릴 필요가 있는 종교이기 때문에, 천주교나 원불교, 몰몬교 등의 종교에서는 직접 나서는 포교 활동을 잘 하지 않지만, 개척 교회나 기독교계 이단들, 도,불교계열의 이단 종교에서는 적극적으로 포교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의 이단성이나 종교적 흠결 같은 것들은 종교를 믿는 사람한테나 중요한 것이고, 종교의 자유를 논함에 있어서 특히 그들의 포교 활동의 문제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이용한다는 점에 있다.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 같은 경우 무종교인의 비율이 높은 것과 더불어, 특유의 사회적 체면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포교 활동이 포교를 당하는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포교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친절함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호구 같음은 포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포교 대상을 물색함에 있어서부터 고려 대상이다.
이러한 포교 활동의 특징은, 애초에 종교를 믿으라고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길을 물어본다든지, 기운이 좋다든지 다른 주제를 바탕으로 포교를 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사회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더라도 이 사람들이 본격적인 주제를 꺼내거나, 애매하게 들어내는 순간부터 칼 같이 거절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런식으로 거절한 후에도 포교를 하는 것은 경범죄 처벌법 제 3조 14호나 같은 조 41호에 위반되기 때문에 녹취 등을 통해 증거를 수집 후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
타인의 신앙 체계와 자신의 신앙 체계
[+/-]종교는 각각의 종교만의 세계관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개신교의 경우 기독교를 믿지 않은 사람은 죽으면 지옥으로 간다는("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 막16:16, 그리고 하와가 이미 선악과를 먹었으므로 기독교 세계관에서 사람은 기본적으로 원죄를 가지고 있다.)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건 개신교를 믿는, 개신교의 세계관을 믿는 사람의 신앙 체계 속 이야기이지, 개신교를 믿지 않은 사람에게는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윤회사상을 믿고 있으면 다시 태어날 것이라 기대할 것이고, 허무주의자는 그냥 스위치를 끄듯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기대할 것이다.
따라서 남이 믿는 신앙 체계를 반드시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선교 과정에서 설득을 하겠지만, 그것을 따를지 말지는 자신의 신념, 종교의 자유에 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