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전기/니체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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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과정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는 생존 당시 뿐만 아니라 그가 죽은 후에 흔히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반 그리스도인'을 쓴 철학자로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니체의 사상이나 그의 책을 두루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두 책의 제목에서 니체의 철학을 신비적 혹은 종교 비판적인 것으로 짐작하게 된다. 철학자가 꾸려간 삶이 물론 그 철학자가 내세운 사상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한 철학자가 걸어간 삶을 추적하여 봄으로서 때에 따라서는 그 철학자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니체의 경우 그의 사상 형성과 발전에 직접 간접적인 영향을 준 여러 요인들, 이를테면 가족 관계, 교육 과정 그리고 우정 및 사제 관계 등을 살펴봄으로서 그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가족[+/-]

니체는 18세기에 북동유럽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게르만 민족의 신흥 군주국인 프로이센의 시민으로서 1844년 10월 15일에 작센 지방(오늘날 작센 안할트)의 뢱켄(Röcken)[1]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니체의 고향은 지리적으로 볼 때 종교개혁의 중심 지방에 속하며 또한 독일 고전주의의 발상지인 바이마르(Weimar)[2]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니체(Nietzsche)'라는 성씨는 대대로 루터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그리 흔치 않은 'Nietzsche'라는 성은 16-17세기에 작센 지방에서 흔한 성으로 기록되고 있다. 'Nietzsche'라는 성씨는 아마 어원적으로 'Nikolaus'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이며, 작센이 주변 슬라브족 국가들과 잦은 왕래를 통하여 아마 그곳에서 Nikolaus가 'Nicki'로 변하면서 이는 다시 슬라브어 발음에 따른 'Nitsch'로 표기된 것으로 어원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니체 자신은 더러 니체 가문의 조상이 폴란드의 귀족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니체가 사망한 후 니체의 외사촌인 막스 욀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니체 가문은 16세기 이래 작센 지방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독일 사람으로 밝혀졌다.

니체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쪽의 증조부까지의 족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증조부: Christoph Nietzsche (1675 - 1739) 외증조부: Christoph Friedrich Krause (1740 - 1783)
할아버지: Friedrich August Ludwig Nietzsche (1756 - 1826)
할머니: Erdmuthe Krause
외할아버지: David Ernst Oehler
아버지: Karl Ludwig Nietzsche
어머니: Franziska Oehler
  1.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2. 엘리자베트(Elisabeth Nietzsche)
  3. 요셉(Jeseph Nietzsche)
아버지 Carl Ludwig Nietzsche

니체의 할아버지는 목사였으며 그리고 아버지 또한 목사였다. 니체의 아버지 칼 루드비히 니체(Carl Ludwig Nietzsche, 1813년 - 1849년)는 할레(Halle)에서 신학을 공부한 다음 그곳에서 공작의 가정교사를 하였다. 가정교사 생활중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3]와 공작의 후원으로 1842년 뢱켄의 목사로 부임하였다. 뢱켄의 목사로서 루드비히는 31세가 되던 해인 1843년에 인근 마을 포블레스(Pobles)에 살던 18살 된 처녀 프란치스카 욀러(Franziska Oehler, 1826년 - 1897년)를 아내로 맞이 하였다. 프란치스카의 아버지 다비드 욀러(David Oehler)는 루드비히와 마찬가지로 포블레스의 목사였으며 열한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이 가운데 프란치스카는 여섯째 딸이었다. 결혼한 다음 해에 프란치스카는 첫 아들 니체를 낳았으며 (1844년 10월 15일), 이 년 뒤에 딸 엘리자베트를 낳았다 (1846년 7월 10일). 칼 루드비히는 아들의 이름을 원래 프리드리히 빌헬름 (Friedrich Wilhelm)이라 지어 주었으나, 후에 니체는 빌헬름이라는 가운데 이름을 쓰지 않게된다.[4]

니체의 아버지는 니체가 4살이 되던 해에(1849년 7월 30일) 뇌연화증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하였다.[5]


1900년대의 나움부르크

아버지가 사망한지 한 해도 안되어서 니체의 가족은 다시 불행을 당하였는데, 1850년에 니체의 아직 두 살이 채 안된 어린 동생 요셉(Joseph)이 잇달아 사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니체의 가족은 그동안 살던 목사관을 루드비히의 후임자에게 비워 주어야 했으며 또한 생계 문제 및 친척이 없는 뢱켄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에 봉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가장이 없는 가족의 가계는 결혼 당시부터 아들의 집에 같이 살던 니체의 할머니 에르트무테(Erdmuthe)가 맡았으며, 2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과부가 된 니체의 어머니 프란치스카는 어린 자식의 장래를 생각하여 재혼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였다. 이런 결심이 있자 니체의 할머니는 니체의 가족을 이끌고 뢱켄을 떠나 몇몇 친척들이 살고 있던 나움부르크(Naumburg)[6]로 이사를 하였다.

니체의 가족은 나움부르크로 이사를 한 다음 조그만 집을 얻어 그리 넉넉하지 않은 생활을 하였다. 가족 구성원은 니체를 제외하고 모두 다섯 명의 여자들이었다: 할머니, 어머니, 미혼의 두 명의 고모 그리고 여동생. 나움부르크에서 니체는 이른바 여자들 사이에서 성장하였으며 그리고 이곳에서 1850년에서 1858년까지 소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내었다.

주석[+/-]

  1. 독일어 위키백과에 실린 뢱켄; 작센 안할트 참조
  2. 독일어 위키백과에 실린 바이마르 참조
  3. 독일어 위키백과에 실린 Friedrich Wilhelm III 참조
  4. Friedrich Wilhelm은 니체의 아버지를 후원해 준 프로이센의 왕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5. 니체 아버지의 병을 둘러싸고 더러 학자들 간에는 니체가 후에 겪게되는 심한 두통과 정신질환이 어떤 연관이 있는 것으로 더러 추측하기도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없다.
  6. 독일어 위키백과에 실린 나움부르크 참조